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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끄적거림/수필

작은 동물원

 

 

고교 졸업 후 출가해서 살고 있는 아이one이 어느 날 강아지 두 마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왔다. 이미 키우고 있던 닥스훈트까지 세 마리가 서로 뒤엉켜 있는 사이 거실은 순간 쑥대밭이 되었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가족들이라 잔소리는 잘 하지 않았지만 두 마리를 작은 공간에서 키우겠다고 고집하는 아이one을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했었다. 지금은 아이one이 군대를 가는 바람에 여기는 요즘 동물농장이 되어 똥천지가 되었다.

 

내 아이one은 태어날 때 부터 다양한 애완동물들과 섞여 자랐다. 하얀색 말티즈하고는 항상 서로 자기가 형이라고 싸우며 자랐는데 아빠 입장에서 보면 그때는 말티즈가 형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애완동물 중에 강아지는 역시 ‘반려견’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듯이 인격적 대우가 가능했기 때문에 형제처럼 자랐다고 할 수 있겠다.

 

작은 방 쳇바퀴가 달려 있던 몇 개의 프라스틱 박스 안의 햄스터는 암수 두 마리가 어찌나 애정이 흘러 넘쳤는지 태어나는 새끼들을 감당할 수 없어 분리해서 키우다 결국 지인들에게 무료 분양을 했다.

하루는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집을 몇시간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쇼파 위에 햄스터 한마리가 흥건히 젖은 채로 죽어 있었다. 새끼를 낳고 분양을 한지 얼마 안된 말티즈가 사라진 새끼들을 무척 찾고 다니다가 집 밖으로 기어 나온 햄스터 한마리를 마치 자기 새끼인 양 물고 쇼파에서 핧아 주었던 것 같다. 햄스터 입장에서는 집채만 한 포식자에게 잡혀 떨고 있는데 자기 몸 만한 혀로 자꾸 핧으며 입맛을 다시니 기겁을 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한 듯 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정사각형에 키 높은 어항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물고기가 아닌 하얀색 개구리 한마리가 살고 있었다. 알비노 개구리라고 물 위에 떠서 물고기처럼 자라는 개구리였다. 바닥 구석에는 고슴도치 두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상자에 넣어 키우던 어느 날 밤에 몰래 탈출한 놈들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서 그냥 같이 그렇게 살기로 했다. 그 후에는 점차 친해졌는데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바늘을 세워 경계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스스로 손바닥에 기어 올라와 쉴 정도로 한가족이 되었던 동물이었다. 발코니에서 키우던 노란 병아리는 너무 잘 자라서 닭이 되었는데 냄새가 너무 심해 어쩔 수 없이 백숙(?)으로 바꾼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고양이, 토끼, 흰쥐 등 참 다양한 동물들을 집에서 아이들과 키웠던 것 같다.

 

마치 작은 동물원 같은 우리 집이 다른 가정에 비해 단정하고 깨끗할리는 없겠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연약한 동물들과 함께 유아기를 보냈기에 서로 보호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성격으로 잘 자라 준 것 같아 고맙고 흐뭇하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거실에서는 강아지 세 마리가 바닥에 털을 뿌리며 뛰어다니고 있지만 수십 년 단련된 가족이기에 물 잔에 떨어진 털 한 가닥도 못본 척 마셔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좋다. 불 꺼진 어두운 밤에 화장실 가다 질퍽한 무언가를 밟았어도 조용히 닦고 들어가 잠을 청할 수 있는 여유로운 우리 가족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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