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끄적거림/수필

이름짓기 #4. 별명 _ Nickname

 

 

별명은 이름 짓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친구들이 쉽고 편하게 부르기 위해서 만들어 지기도 하지만 하대하기 위해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안에 의미란 거의 없고 축복이나 바램 따위는 더더욱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강아지 이름 짓듯이 쉽게 지어지고 부르는게 별명인 것이다. 어쩌면 강아지 이름짓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지도.

 

별명은 누가 먼저 우수깡스러운 단어를 찾아 내는가에 달렸다. 나는 성이 ‘조’씨라서 조조라고 불렸다. 이름이 무엇인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냥 누군가 ‘조조’ 했는데 주변에서 웃었다면 그냥 평생 조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같은 반 같은 성이 다 같은 별명을 갖는 건 아니다. 그냥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각자의 감정에 따라 그대로 정해지는 것 뿐이다. 그나마 난 다행이었다. 다른 같은 성을 가진 친구는 ‘조지’라고 불리웠으니까.

 

초등학교 때 지어지고 불리운 별명은 희한하게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동창생들이 있었기에 학교가 바뀌어서도 별명은 쭉 이어진 듯 하다. 절대 내 얼굴이 조조를 닮아서는 아니다. 정말 아니다. 

싫어하던 별명을 부르는 아이와 다투고 싸우면서 친구가 되고, 오랜만에 만나면 이름보다 먼저 생각나 부르는게 별명이다. 별명은 남여노소를 막론한다. 따지자면 장난이 많은 남자들이 주로 사용하겠지만 별명은 나이의 한계를 떠나 평생을 함께 하는 것 같다. 가끔 식당에서 한 잔 하시는 어르신들이 서로 별명을 부르며 옛 이야기 하시는 정겨운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고교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졸업 후 잃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서로 바빠진 모습에 잊혀졌나 보다.  직장생활에 여유가 생기는 시기가 오자 전공이 같은 그를 찾아 보려고 노력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또 잊혀졌는데 우연히 SNS를 통해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의 첫 마디는 ‘조조’였다.

 

 

우리는 위대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단한 인물이 되기를 축복하며 지어 준 인생의 첫번째 고귀한 선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너무 순결하고 아끼는 마음이 간절해서 애지중지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민족성 때문인가. 어떻든 크게 상관은 없다. 별명이건 이름이건 모두 나를 지칭하는 말이고 단어니까. 

 

이 세상 주인공은 나야 나. 나야 나.

'문학 끄적거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강아지 이름은 빠삐  (0) 2019.03.05
작은 동물원  (0) 2019.03.04
이름짓기 #3. 작명 (作名)  (0) 2019.02.28
이름짓기 #2. By5persons  (0) 2019.02.28
이름짓기 #1. 나의 첫 이름  (0) 2019.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