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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끄적거림/수필

이름짓기 #1. 나의 첫 이름

 

 

23살이었던가. 그때가?

30개월 군대생활을 마치며 돌아와 전국을 돌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복학 전에 구입했던 386 PC.

20인치 CRT모니터에 캐논 잉크젯 프린터까지 들고 와서 처음 설치했던 프로그램이

 

이야기 5.3

 

모뎀을 통해 전화접속하고 '하이텔', '천리안'에 접속해 조잘대던 시절.

가장 먼저 해야했던 건 바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정하는 것이었다.

빨리 접속해야 했기에 아무 생각없이 정했던 아이디. 나의 닉네임.

 

fizcho

 

굳이 의미를 두자면 Fizz + Cho 였다. 아무런 의미와 뜻이 없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그렇게 인터넷 세계는 나를 '피즈'라고 불러주었다.

'피즈야', '피즈형', '피즈오빠' 라고...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아주 긴 시간이. 그 긴 시간동안 인터넷 세계는 나를 계속 그렇게 불러주었다.

 


 

어느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믿었던 인터넷 세계는 이제 나만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76억명의 세계 인구 중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고, 그 6자의 알파벳 영문자는 이제 나만의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것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이트에 가입할 때 자연스럽게 썼던 나의 이름을 누군가가 이미 사용하고 있다고 할 때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름이나 별명은 타인이 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이름을 또 내가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것도 매번 새로운 이름으로 정해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가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 내 이름을 버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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