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는 아버지 가시고 딱 1년 후에 태어났다. 아마 계셨더라면 직접 작명을 해 주셨겠지. 어쩌면 그게 가장(家長)의 의무일 수도 있을테니까. 그 때 가족들은 저마나 하나씩 이름을 지어 왔다. 한자의 뜻과 음을 이야기하고 발음하며 주장했었다. 어차피 결정은 가장의 몫이었는데 그건 바로 나였다. 합의가 없었던 독단적인 결정은 아니었지만 결국 내가 주장하던 대로 정해졌고 등록했다.
현재까지 만족하며 지내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참 잘한 결정이라고 여겨진다. 아이가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그 이름으로 해를 입은 적이 없다는, 아니 많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마도 부모가 아이의 작명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이름으로 인하여 친구들에게 어떻게 불리우게 될 것 인가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성과 이름을 구분하여 이리저리 붙였다가 띄어보고 비슷한 단어로 맞춰보기도 하면서 해롭거나 우스운 단어는 없을까 걱정하면서. 그러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아 작명을 하게 된다.
이름은 가족의 축복과 바램으로 지어진다. 향후 어떤 삶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대단한 인물이 되기를 기도하며 축복하고 고민하면서 지어 준다. 이름은 인생의 첫번째 고귀한 선물인 것이다.
하지만 학교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많이 달라진다. 평생 그를 부르라고 만들어 주었지만 사회에서는 쉽게 부르지 않는다. 대신 신분에 따른 직위에 성을 붙여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생애 첫 선물로 축복 가득한 이름을 받았지만 정작 모든 사람이 김사장이고 조실장이 되어 버린다.
어느 날 회사 근처를 지나다가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르길래 뒤를 돌아 보면서 “누가 감히 내 이름을 부르는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나의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 직함으로 불리우는게 당연해 지고, 익숙해 지면서 내 이름보다는 내 직함이 돋보여지는 것에 매진하며 무심코 살아 왔던 건 아닌지 후회하며 반성하게 된다.
이름은 그런 것 같다.
명함이 생기고 나면 부르는 것 보다 바라 보는 경우가 더 많아 지는 단어.
숙연한 말이지만 납골당 조그만 칸 안에 갖혀 있는 항아리, 빨간 십자가와 함께 적히고 마는 단어. 그 곳엔 사장이나 대표라고 적지는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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